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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이정연 (2010/03/20
요즘 중3이 되고 나서 이래저래 정서가 불안전 해서요 ...
그래서 요즘 ... 글이 만나고 싶어요 ...

저번에 김 가영 선생님을 따라 동리 목월 문학관에 시 낭송 을 들으러 갔었습니다 .
듣기 로는 유료로 시 쓰는(?) 것과 긴 글(?) 쓰는 것을 강의한다고 들었고,
강의실 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어른 분들이더 라구요 ... 혹시 올해도 하나요 ???
수업을 따라갈 자신은 없지만 ... 정말 글을 만나고 싶습니다 ..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는 안지만 .. 초등학생 수준이라도 시 쓰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시에 대해서 취미 삼아 .. 마음 좀 가다듬을까 해서 그러는 데 ..

그 강의가 올해도 하는지 .. 그 강의 저도 들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33. 박경숙 Modify Del (2009/11/26
가을 단풍을 닮은 농익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동행 ... 동리, 목월 문학관을 찾아서



서라벌

푸른 하늘을 받들고 선

석가탑과 다보탑은

서라벌 천년의 불심이 어린

두 채의 보배탑

한국문학사

그 면면한 흐름 위에 우뚝 선

목월, 과 동리는

한국인 마음 속에 영원히 서 있는

두 채의 금자탑

‘두 채의 탑’ - 허영자 -




경주하면 떠오르는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처럼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주하면 두 사람이 떠오른다. 김동리 작가와 박목월 시인이다. 경주에는 두 분의 발자취와 숨결이 곳곳에 담겨 있다고 전한다.서부도서관 독서회팀과 경주의 두 채의 금자탑을 찾아 떠나는 짧은 여행에 가을이란 놈이 따라 붙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황금 들판이며 색색이 수놓은 낮은 산이며 모든 존재를 다 담을 것 같은 하늘빛이며 가을은 황홀했다. 그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쯤 남후섭 관장님께서 경주의 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해박하고 다정한 문화해설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든든하고 따뜻했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은 박목월 시인의 ‘얼룩송아지’ 노래비가 있는 황성공원이었다. 아름드리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노래비가 참 소박하게 느껴졌다. 목월 선생의 제자며 시인이신 정민호 선생님으로부터 노래비에 얽힌 일화도 전해 들었다.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은 나이를 초월하는지 스승과의 추억을 말하실 때는 추억에 젖는지 눈빛이 아이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노래비 앞에서 정민호 선생님의 제의로 다 같이 손뼉을 치며 ‘얼룩송아지’를 불렀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귀가 닮았네......” 잠시나마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은 보문단지 내 홍도공원을 찾아 ‘달’ 시비를 보기 위해 걸었다. 도로에 쌓인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눈처럼 휘날렸다. 낙엽을 밟고 계단을 내려가니 구름위에 반달이 떠있는 형상의 시비가 눈에 띄었다. ‘달’ 시비는 목월 시인이 허영자 시인에게 써준 시가 남아 있어 그 육필을 그대로 옮겨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배꽃 가지’ 인데 허영자 시인에게 써줄 때는 ‘도화 가지’라도 썼다고 한다. 여자에게 주는 것이라 멋을 내신 것 아닌가 추측하신다며 정민호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덧붙이셨다.

목월 시인은 육영수 여사의 예절 선생님으로 계시면서 친분이 두터워 원하는 직책을 주겠다고 하셨지만 문화부 장관까지 사양하시고 돈이 없어서 시집을 낼 수 없는 시인들의 시집을 내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이 많이 나왔다며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버스에 올라 몇 분을 더 달리니 불국사 바로 옆에 있는 동리, 목월 문학관에 닿았다. 시원한 분수와 노란 국화, 운치가 느껴지는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문학관 마당 왼편에는 문인들의 추모시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달’ 시비에서 들은 익숙한 이름인지라 허영자 시인의 추모시 ‘두 채의 탑’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허영자 시인의 시구처럼 두 분이 한국인의 영원한 금자탑으로 모든 이들의 마음에 새겨지길 소망하며 문학관이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전시실을 둘러보기 전에 영상물을 관람했다. 가장 한국적인 작가, 김동리와 국민시인 박목월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김동리 작가는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선이의 갑작스런 죽음 후 죽음을 탐구하게 되었고, 이후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생애를 알고 나니 작품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졌다. 동리의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운명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적 정서와 운율로 국민시인으로 사랑받는 박목월 시인의 생애와 작품도 인상 깊었다.

두 분의 육필원고, 초판 책, 자작시 육성음반, 일기, 늘 옆에 두었던 사진과 시계, 재떨이까지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작업실을 생생하게 보존해 두어 목월과 동리 선생님이 그 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환영이 잠시 스쳤다. 목월 시인의 시세계는 학교에서 배워 자연 지향적이고 향토색 짙다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존재 탐구적인 시도 눈에 띄어 새로웠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진리가 실감났다.

누구는 재미가나서 사는 건가

누구는 락을 바라고 사는 건가

살다 보니 사는 거지

그렁그렁 사는 거지

그런 대로 해마다 장맛은

꿀보다 달다......

''''''''장맛 '''''''' 중에서...

‘장맛’이란 시를 읽으니 깊은 삶의 고뇌가 전해져 마음이 짠했다.

‘위난의 시대일수록 시는 밝은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는 구절이 눈이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와 슬픈 현대사에서 시인의 길을 걷기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동리관에는 김동리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다양한 전시품과 애니메이션 영상물이 있었다. 세밀하고 자상하게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다.

문학관 관람 후 마당에 자리를 깔고 점심 식사를 했다. 회원들이 정성들여 싸온 다양한 메뉴로 인정 넘치고 따뜻한 밥상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관람 소감을 말하지 않던 회원님들이 배속이 가득 차니 하나둘 감상을 얘기했다. ‘황토기’의 배경지와 ‘무녀도’ 배경지, 동리 생가, 목월 생가를 둘러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가는 길에 누렇게 변한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탈곡기가 돌아가는 논도 있었고, 수확한 벼가 나란히 누워있는 논도 보였다.

이때부터는 문학관 부관장이며 김동리의 제자이신 서영수 선생님께서 동리 작가의 인간미를 일화를 들어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동리 선생이 4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는 얘기며, 출가했던 얘기, 사랑 얘기, 귀에 쏙 들어오는 흥미로운 얘기였다. 회원들도 작품 얘기할 때보다 눈이 더 초롱초롱해졌다.

‘황토기’ 배경이 되는 곳에 도착하여 들판과 산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고 돌아나갔다.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렸지만 수줍은 얼굴로 새색시처럼 서있는 노란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현장을 둘러보아도 그 시절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상상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작가의 마음을 읽어 보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치 몇 마리 날아올랐다.

동리 작가의 생가는 다른 분들이 살고 계셔서 대문도 열지 못하고 구멍으로 엿보았다. 내 조국을 사랑하지만 작가의 생가나 추억이 담긴 곳이면 돈을 아끼지 않고 복원하며 관광지로 만드는 외국이 부러웠다. 동리와 목월 선생의 생가에 앉아 두 분을 떠올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무녀도’ 배경지인 예기소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확 트인 강이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가을 햇빛을 받아 유리알처럼 반짝거렸다. 말끔하게 정돈된 자전거 도로에는 간간이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갔다. 서영수 선생님께서 예기소에서 있었던 동리 선생과의 추억을 얘기해 주셨다. 밤에 막걸리를 마시며 예기소를 바라보면 도깨비불이 보였다고 하셨다. 스승과의 추억을 더듬는 늙은 제자의 눈에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무녀도’는 나중에 ‘을화’로 개작되어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우리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번역 작업도 중요하고, 국력이 강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에 신경 쓰며 추억의 앨범에 담길 사진을 몇 컷 찍고, 짧은 산책도 즐겼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라 아쉬움 때문일까, 모화의 혼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마음이 젖어들었다. 혼을 달래는 모화의 몸짓이 간절히 그리웠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걸 아프게 알아차렸다. 예기소는 ‘무녀도’와 함께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예기소가 영원히 증발되지 않을 물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회색 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이 좋았다. 차갑지 않은 바람도 좋았다. 서쪽으로 침강하는 마지막 햇살도 좋았다. 특히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알찬 문학기행 만들어주신 서부도서관에, 그리고 자상한 설명해주신 문학관의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해박한 지식과 유머로 자상한 설명을 해주신 남후섭 관장님께 존경과 사랑을 전합니다.
 
 32. 유희석 (2009/09/22
안녕하세요.우리 문화를 아시아의 아름다운 등불인 우리의 문학을 아끼고자 더욱 노력을 하겠사옵나이다.
 
 31. 문학관 (2009/07/17
안녕하세요.
동리목월문학관 입니다.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박목월 선생님의 출생년도는 1915년이 맞습니다.
목월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필이력서에 1915년1월6일생으로 되어있기때문에 본인이 쓴 이력서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영상물에 1915년 이라고 된것은 영상물 제작사에서 일부 사전에 있는 것을 참고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차후 시정할 예정입니다.
문학관에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30. 황병도 Modify Del (2009/06/14
아래에 학생이란 분이 박목월 선생님의 출생 연도가 1916년이라고 하셨는데,
동리.목월문학관에 있는 자료는 물론이고 이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에도
1915년생으로 되어 있습니다. 1916년으로 되어 있는 자료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영상물에만 1916년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916년생이 맞다면 심각한 오류입니다.
 
 29. 학생 Modify Del (2009/06/04
문학관 직원은 아닙니다만..;;다른 자료라는 게 혹시 우리 문학관의 자료였나요?ㅠ목월 선생님의 생년은 1916년생이 맞습니다 ㅋ 빠른 생일이시기 때문에 간혹 나이로 생년을 계산하는 곳에서 그런 실수가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중요한 신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8. 황병도  URL  Modify Del (2009/06/01
귀 문학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문학관을 다녀온 출향인입니다.
관장님의 설명도 잘 들었고, 상영하는 내용도 잘 봤습니다.
그런데 영상물에는 박목월 선생의 출생년도가 1916년으로 되어 있었는데,
다른 자료들에는 1915년으로 되어 있더군요.
확인하신 후 수정하셨으면 합니다.
 
 27. 관리자 Modify Del (2009/04/30
감사합니다.
방명록 의견에대한 답변입니다.
우선 당일 시제를 발표하였습니다.
장르별 한편씩 제출은 상관이 없습니다.(예:운문1편, 산문1편)
그러나 운문과 산문에 각각 두편이상 제출은 심사에서 제외된다는 사항으로 말씀
올렸습니다.
끝으로 보내주신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가공지사항)
* 고등 운문부에서  두편이상 제출 당선(가작,장려당선작)하신 학생은
  무효로 처리되었습니다.
해당 학생은 수상취소가 되었으니 시상식 참석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26. 비오동 Modify Del (2009/04/29
아이가 입상을 했더군요.
감사합니다.

장원이 아니어서
입상작을 볼 수 없을까 염려됩니다.
글쓰기 지도를 위해서도
아이가 쓴 글을 꼭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경로가 있을까요?
 
 25. 22번 질문 저도 한마 Modify Del (2009/04/28
초등저학년도 중복 입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운문 여러편 산문 여러편은 안되고 한사람이 운문,산문 각각 1편씩은 중복 제출해도 된다고 기념식 끝나고 담당자분께  들었습니다. 저말고도 여러분이 많이 들으신걸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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